조용한 희망

넷플릭스 드라마인데 알고리즘이 추천해서 봄. 대충 제목과 포스터 분위기로 미국의 소외된 계층 이야기라고 예상하고 틀었는데, 생각보다 좀 더 이야기가 흡입력있고 교훈도 있고 인간극장처럼 타인의 일상을 보는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고구마적인 전개와 현실감있는 공포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풍부하다.

 

여기서 갑자기 mbti 이야기를 꺼내면 좀 생뚱맞긴 한뎈ㅋ 난 사람들이 계획형이라고 말하는 J다. 모든 계획을 다 지키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타입이다. 사람들은 이걸 타고난 성향이거나, 가정환경에 따른 성향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가 계획을 짜고 행하는 이유는 사실 공포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미래'라는 두 글자만 보면 막막하다. 최악의 상황만 그려지고 늙은 나는 불행할 것만 같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인해 계획형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획을 짜면 적어도 내일 내가 할 일은 그려진다. 좀 더 짜면 일주일 뒤도, 일년 뒤의 미래도 어느정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런 게 없다. 주인공의 당장 내일 인생이 어찌될 지 감이 오질 않는다. 쓰레기 같던 하루를 쳇바퀴처럼 되풀이할 수도 있고 그것보다 더 최악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시청자는 드라마 도처에 작게 흩뿌려진 희망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다음 화에선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착한 사람의 도움을 받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드라마의 좋은 점은 주인공이 이러한 타인의 도움을 일회성으로 본다는 점이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도움을 받지만 그 도움이 지속될 거라는 희망은 품지 않는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으로 보진 않는 것이다.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남편도,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건실한 싱글대디도 근본적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인공은 몸소 체험한다. 딸은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긴 하지만 아직까진 너무 어려 주인공이 안고 가야할 짐에 가깝지 이 상황을 타파해 줄 희망이 되진 못한다.

 

이렇듯 희망은 타인에게 있지 않다. 희망은 어디에 있든 항상 고무적이어야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타인과 함께 희망을 꿈꿀 순 있지만, 타인 자체가 희망이 될 순 없다. 희망은 자신 안에 있다. 물론 자아실현의 욕구와는 좀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하지만...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희망을 두 가지 얻었다. 쓰던 글을 보내서 장학금을 받게 된 것, 또 하나는 타인의 집을 청소하면서 자신의 꾸리고 싶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꿈꾸게 된 것. 둘 다 본인이 행동하며 얻은 다음 단계라는 점이 인상 깊다.

 

드라마가 끝나고 정말 주인공이 학교를 잘 다녔는지, 아이와 별 탈 없이 잘 살았는지 궁금하진 않다. 그저 자신의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또 자신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도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