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중인 영국작가 클레어 노스의 소설이다. SF소설인데 무척 재밌다고 입소문이 퍼져 기대가 컸다. 사실 초반엔 이야기 흐름이 뚝뚝 흐르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시점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패턴에 익숙해질 때쯤부터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어 정말 이야기에 혼이 쏙 빠진다. 처음엔 읽는데 속도가 잘 나지 않아 이걸 언제 다 읽나 걱정이었는데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책의 두께는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생각만큼 읽는데 힘을 들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이 책은 SF이고 거기다 타임리프물이지만 세계관은 실제 있었던 역사에 기초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중국에 대한 부분이다. 

 

유서 깊은 청나라 고택들이 밀집된 지역 전체가 하루아침에 철거되었지만 사라진 주거지를 대체할 만한 자원이 아예 없었다. 거대한 마천루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완공되지 못했고, 그래서 4층까지 올라가다가 "애초에 우리 게획이 여기까지였어"라고 말하듯 대충 지붕이 얹히곤 했다. 포스터가 사장에 붙어 있었고 프로파간다는 적어도 내 감수성으로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원색적이고 순진했다. 전통적인 공산당 정권의 필수 요소(잘 가꾸어진 들판에서 붉은 태양을 등지고 함께 분투하는 가족의 이미지라든가)부터 화분을 가꾸면 청결한 삶을 누릴 수 있다든가,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위생에 더 신경 쓰라든가, 이런 좀 더 특이한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산당의 프로파간다는 흡사 도시 전역에 전시되는 학생들의 미술 과제를 연상시켰다. 그럼에도 프로파간다를 떠받치는 열정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사제처럼 열렬하게 시대의 수사를 쏟아내는 목소리 큰 사람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문화대혁명 당시가 자기 생애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절이라고 믿고 살게 될 터였다. 독재가 번창하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선의를 지닌 사람들의 순응이라는, 해묵은 진실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목소리 크고 시끌벅적한 소수의 광신도들이 기근과 파멸을 향해 인민 찬가를 부르며 행진할 때 당시 중국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며 지켜보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이미 미래에 어떻게 될 지 아는 사람의 시각으로 지난 역사를 체험한다는 것. 그게 이 소설의 포인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 더불어 신이 되고자하는 열망. 이 책은 SF이긴 하지만 역사도 다루고 있고 더불어 우리는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철학적 질문들, 그리고 그것을 과학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 등등 역사, 철학, 과학이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주인공이 타임리프를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종교에 의지 > 스스로 미래를 바꿔보려고 함 > 과학에 기댐 이 과정이 서양 인문고전의 발전을 흐름과 비슷하여 신기했다.

 

"배은망덕하다고요?"
"평생 이 집의 식솔이었잖니." 할머니가 대답했다. "영지의 일부나 다름없단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훌쩍 떠나버린다니, 우리가 너한테 이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단 말이야. 해리, 솔직히 말해야겠다. 우리 모두 네가 더 나은 아이인 줄 알았지."
"케임브리지에 장학금을 받고 가는 것보다... 더 나을 거라고요?"
"그래. 그리고 그런 짓을 그렇게 음흉하게 뒤에서 꾸미다니! 허락도 구하지 않고, 따로 공부도 하지 않고, 수업도 따로 받지 않고 말이야. 원래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잖니!"
콘스턴스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 여자도 참, 자기 나름대로, 완전히, 완전히 돌았구나 생각했다. 신경학적으로 미쳤다는 게 아니라, 정신병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문화적인 광기였다. 전염병처럼 어떤 기대에 얽매여 자기가 원하는 세상과 실제의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 썩어버린 것이다. 상황이 달랐다면 나는 천재라고, 그야말로 영웅이라고, 케케묵은 세상에 사회 개혁을 가져온 모범사례라고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콘스턴스에게는 이 모든 게 다 내가 반항하라는 의미일 뿐이었다. 콘스턴스가 21세기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쌍둥이빌딩이 무너져 내릴 때 과연 울기나 할지, 그게 궁금해졌다.

 

해리와 빈센트는 주로 대립하는 객체였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 같다. 이 소설은 이러한 맥락에서 러브 스토리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러브는 애증에 가깝지만. 즐거운 이야기였고 영화화 된다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간만에 소설 읽는 재미를 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