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4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이제야 읽었다. 내가 책을 워낙 안 읽기도 했고, 이런 과학 분야는 나랑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요즘 몇 권을 책을 접하고 나니 철학과 자연과학, 경제는 정말 밀접하게 붙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소피의 세계>를 읽고 나서부터인 것 같음) 그래서 이런 진화생물학 책을 고른 것인데 소설이나 인문학책처럼 잘 읽히지 않아 애먹었다. 이해가 바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나름 독서노트를 정리하면서 읽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리처드 도킨스는 책 도입부에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고 주장한다. 나머지 내용은 이런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임. 솔직히 저 주장만 놓고 봤을 땐, 한 100년 뒤 극도로 발달된 세계에서 후손들이 '야, 옛날엔 조상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대.' 라며 비웃기 딱 좋은 주장 같은데 글쎄... 이미 이곳저곳에서 사변적이다, 틀렸다 라는 말이 나왔던 걸 보면...

 

하지만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리처드 도킨스의 말이 다 맞는 것처럼 보였다. 학생 때 배웠던 다윈주의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멸종한다.'  같은 이야기만 머리로 어슴푸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도킨스의 주장은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원시 수프 속에서 등장한 자기 복제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피난처로 생존기계를 만들어 냈다는 것. 그리고 ESS라는 안정한 전략을 통해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고 생존기계가 돌아가도록 프로그래밍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7장~9장이었는데 각각 가족계획, 세대 간의 전쟁, 암수의 전쟁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개체를 낳는 것과 키우는 것의 이야기인데 그 중에서도 암컷이 더 새끼에게 애착을 가지고 육아를 하게 되는 이유가 인상 깊었다. 도킨스 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수컷에 비해 암컷은 큰 생식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새끼에게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신, 젖 등)

 

가장 이해가 어려웠던 개념은 11장의 밈인데, 이것은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의 명사임. 그러니까 문화 역시 유전자처럼 번식한다는 개념인데 지금 이렇게 정리를 하는 순간에도 아리송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신에 대한 관념 같은 것. 몇 세대 못 가는 유전자에 비해 밈은 후세로 길게 이어지고 때때로 독신주의와 같은 형태로 유전자와 대립한다는.. 대충 이런 이야기인 것 같당.

 

물론 이 책은 인간의 의식이나 자유의지 모두를 설명하진 못하지만 나름 합리적으로 여러 예시를 제시하면서 주장을 이어가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세 번째 독자는 일반 독자에서 전문가로 넘어가는 단게에 있는 학생이다. 아직도 자신의 전공을 결정하지 못했다면, 나는 내 전공 분야인 동물학을 고려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동물학을 공부하는 데는 그 '유용성'이나 동물에 대한 일반적인 애호보다 더 뜻 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동물이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완벽하게 설계된 기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왜 사람들이 다른 전공을 택하는지 모르겠다. 
무선 전파가 지구와 화성 사이를 오가는 데 약 4분 걸린다. 이제 우주 비행사는 짧은 문장으로 말을 교환하는 습관을 버리고 대화보다는 편지 같은 장문의 혼잣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로저 페인이 지적한 대로 바다는 독특한 음향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일정한 깊이에서 헤엄치는 어떤 고래들의 엄청나게 큰 '노래'는 이론적으로 세계 모든 곳에서 들을 수 있다. 고래들이 실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교신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화성에 있는 우주 비행사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수중의 음속으로 계산하면 그 노래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회답이 오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린다. 일부 고래들이 반복 없이 8분간이나 계속 독백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8분간의 독백이 끝나면 고래들은 노래를 처음부터 계속 여러 번 반복하는데, 그 반복 주기는 8분 정도다.
윈-에드워즈는 영역을 놓고 다투는 동물들이 한 조각의 먹이와 같은 실질적인 목표물이 아니라 특권을 보증하는 표식, 즉 토큰을 놓고 싸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개의 경우 암컷은 영역이 없는 수컷과는 짝짓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짝지은 수컷이 다른 수컷에게 패해 그 영역의 주인이 바뀌면 암컷이 재빠르게 그 스장에게 들러붙는 일도 종종 있다. 성실하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도 암컷이 수컷 그 자체와 결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컷이 소유하는 영역과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임은 종종 '부자연스럽다'고 비난받는다. 그렇다.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복지 국가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복지 국가를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복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자연스러운 산아 제한을 실행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 상태에 있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결과에 이를 것이다.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키울 수 있는 것 이상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므로, 그들이 의식적으로 악용을 꾀한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나는 다수의 아이를 낳도록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지도자나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그 혐의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짝 중 어느 쪽이나 이기적 기계로서 동수의 아들과 딸을 '바랄' 것이다. 여기까지는 양쪽의 이해가 일치한다. 이들이 일치하지 않는 점은 자식들 각각의 양육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어느 개체든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자식이 생존하기를 바란다. 자식에 대한 투자량이 줄어들수록 그만큼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자식의 수는 증가한다. 이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 한 가지는, 파트너에게 자식 각각에게 공평한 배분량 이상을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자기는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자식을 얻는 것이다. 이 전략은 암수 누구한테나 바람직한 것이지만 암컷이 이를 구사하기는 수컷에 비해 어렵다. 왜냐하면 암컷은 크고 영양소가 풍부한 난자의 형태로 처음부터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태할 때부터 이미 어느 자식에 대해서건 아비보다 더 깊은 '정성'을 쏟는다. 자식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래에 새로운 자식을 죽은 자식과 같은 단계까지 키우려면 어미는 아비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어미가 자식을 아비에게 맡기고 다른 수컷을 찾아 나서는 전술을 취하면 아비도 별 부담 없이 자식을 버릴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아직 어린 자식을 내버릴 경우, 버리는 것은 어미가 아니라 아비일 확률이 높다. 이와 같이 암컷은 처음뿐만 아니라 자식의 생장 전 기간에 걸쳐서 수컷 이상의 투자를 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포유류의 경우 자기 체내에서 태아를 키우는 것도 암컷이고, 태어난 자식에게 젖을 만들어 먹이는 것도 암컷이며, 자식의 양육과 보호의 부담을 지는 것도 암컷이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며,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 있다. 
처음으로 번식에 참가하는 젊은 암컷이 낳는 자식에게는 바람둥이 아비의 유전자가 비교적 많이 포함될 것이나, 다음 해 이후에는 성실형 수컷이 유리해진다. 성실형 수컷은 그 이후에는 첫 번째와 같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수반하는 기나긴 구애 의식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개체군의 개체 대부분이 번식 경험이 있는 어미의 자식이라고 하면 성실하고 좋은 아비를 만드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서 우세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야기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수컷에게는 전적으로 성실하거나 전적으로 사기꾼형인 두 가지 유형밖에 없는 것처럼 설명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십중팔구 모든 수컷, 아니 모든 개체들이 배우자를 착취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프로그램되어 조금씩 기만적인 성격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배우자의 불성실을 감지하는 능력은 자연선택에 의해 예민하게 단련되어 있으므로 대규모 사기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다. 사기를 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수컷이 암컷보다 많다. 따라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상당한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동물일지라도 수컷은 암컷보다 조금 덜 일하며, 수컷의 도피 경향도 암컷보다 조금 더 강할 것이다. 이 현상은 새와 포유류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암수 누구나 자신의 생애 동안 총 번식 성적이 최대화되기를 '바란다'. 정자와 난자의 크기 및 수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수컷들은 일반적으로 아무 암컷하고나 짝을 짓고 자식 부양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항하는 대책으로 암컷은 두 가지 대표 전략을 갖고 있는데, 그 하나는 남성다운 수컷을 뽑는 전략이고, 또 하나는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뽑는 전략이다. 암컷이 이 두 대항책 중 어는 것을 취하는지, 또 수컷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모두 그 종의 생태적 환경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민사 '분쟁'이라고 하는 것에는 실제로 크나큰 협력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하다. 영합 대립으로 보이는 것에 약간의 선의를 보태면 쌍방에 이익을 주는 비영합 게임으로 바꿀 수 있다. 이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중략) 그 부부가 서로를 적대시하든 그렇지 않든, 현명하게 서로를 우호적으로 대하는데 동의하든 아니든 간에, 그 부부는 서로를 적대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혼을 '내가 이기고 너는 진다'라는 싸움으로 다룬다면 누가 이익을 얻겠는가? 이익을 보는 것은 아마도 변호사들뿐이다. 불행한 부부는 영합게임에 말려들고 만다. 그러나 변호사들에게 소송은 짭짤한 비영합 게임이다. 그들은 스미스 부부 각자가 돈을 지불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잘 짜인 협력을 통해 두 의뢰인의 구좌에서 돈을 쏙쏙 빼낸다. 그들이 협력하는 하나의 방법은 상대측이 수락하지 않을 것이 뻔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이 제안은 수락하지 않을 것을 양측이 모두 뻔히 알고 있는 반대 제안을 내놓도록 부추긴다. 이런 식으로 일이 계속 진행된다. (중략) 양측 변호사는 이 모든 것을 진행하는 데 같이 만나 일하지는 않는다. 얄궂게도 그들이 주도면밀하게 떨어져서 일하는 것이 고객의 돈을 빼가는 그들의 협력을 실현하는 주된 수단이다. (중략) 이 시스템은 어떤 의식적인 감독이나 관리 없이 작동한다. (중략) 의뢰인에게는 영합게임이지만 변호사에게는 비영합 게임이다. (중략) 인간의 생활에서 다른 게임은 어떨까? 무엇이 영합적이고 무엇이 비영합적인가? 그리고 (사실과 인식은 다르므로) 우리는 인생의 어던 측면을 영합적 또는 비영합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일까? (중략)우리는 심리학 실험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영합 게임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영합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