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티비서 해주길래 아무 생각없이 틀어놨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재미에 쉽게 채널을 돌릴 수 없었다. 한국영화는 언제부턴가 대서사시보다 이런 단편적인 사건을 재밌게 풀어내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선균 주연의 영화<끝까지 간다>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음. 고희연 잔치 모습이나 높은 건물이 많지만 옥상 문을 항상 잠가두는 점, 고깃집 연통 등장 등 정말 한국적인 문화 요소가 리얼리티를 더해줘 한국사람이 봐도 재밌는데,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특이하고 신기한 문화이니 흥미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정석은 마치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적당히 찌질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용기를 내는 주변에 있을 법한 청년을 보여줬고 윤아도 잘 어울렸다. 물론 마치 가족이 조정석에게만 있는 듯한, 윤아는 '나중에 부모님 오시기로 했어.' 한마디로 끝나는 게 좀 아쉽긴 했음. 조정석의 가족들이 어떤지 짧지만 강렬하게 겪은 윤아가 조정석과의 만남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난 것은... 윤아가 재난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이해했다.

 

내 취향은 이런 재난 후 사람들이 어떤 후유증을 겪고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사회를 어떻게 복구시키는가에 있지만, 가끔은 이런 코미디 영화도 나쁘지 않아. 사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볼 땐 이런 영화가 더 좋다. 예전에 비하면 한국의 코미디 수준도 많이 높아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