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이 제목을 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자(漢字)'와 나오키라고 생각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랬다. 나오키라는 주인공이 한자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건가? 했다. 문장가라든지 언어학자라든지... 그만큼 보기 전까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재생을 하고 나서야 이 드라마가 한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자와 나오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자 은행원의 이야기구나 깨달았다. 

 

2021년 7월 현재까지 시즌2까지 나왔고 그사이에 나온 스핀오프가 하나 있다. 시즌1은 2013년에 방영되었고 시즌2는 그로부터 7년이 흐른 2020년에 방영됨.

 

시즌1은 도쿄중앙은행을 다니는 한자와 나오키가 오사카 지부에서 맞닥뜨린 위기와 활약을, 시즌2는 도쿄중앙은행의 자회사인 도쿄센트럴증권과 은행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이야기다. 스핀오프는 시즌1과 시즌2 사이에 나왔는데,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는 거의 나오지 않고 시즌2의 배경이 될 인물과 설정이 나온다. 보지 않아도 이야기 파악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의 스핀오프임.

 

나중에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방영되기 전부터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였고 첫 화부터 시청률이 매우 높았다고 함. 공식 시청률 통계에 따르면 시즌1은 평균 28.7%, 시즌2는 평균 24.7%였다고 함.

 

 

일본드라마 특유의 강한 캐릭터성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꼰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주인공을 보면서 '눈을 왜 그렇게 떠?'하고 속으로 꼰대질을 하고 있는 것... 자신의 포부를 얘기할 때나 사건의 비리를 파헤칠 때, 남을 다그칠 때 항상 위 사진의 표정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과장된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만화책 주인공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함. 주인공뿐만이 아니었다. 툭하면 남성들의 성기를 잡고 여성의 말투를 따라 하는 것 같은 조연도 있었고, 철없지만 해맑은 아내 역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 하나같이 캐릭터가 아주 강했다.

 

캐릭터가 강하면 이야기 파악이 쉽고 예측도 어렵지 않으며 기억에도 잘 남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불어 그게 전부인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음. 조연이 백 명, 천 명 나와도 이야기가 아주 얄팍해지는 것이다. 반전이 있어도 충격이 덜하고, 정말 안 그럴 것 같은 캐릭터가 반전의 주역이 된다면 개연성을 찾기 힘든... 캐릭터가 강하면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잘 알려주는 드라마였다.

 

 

도게쟈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예전 자주 눈팅하던 커뮤니티에서 '일본 드라마는 툭하면 도게쟈 하라고 한다.'는 말이 나와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적이 있다. 그때 이야기가 나왔던 드라마는 교내 왕따를 다룬 '라이프'였던 것 같은데, 왕따 피해자에게 전교생이 나와 도게쟈를 요구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었음. 다 같이 나와 도게쟈~ 도게쟈~ 노래를 부르는데 피해자는 그 상황을 매우 굴욕스럽게 여기는 것임. 그 도게쟈가 이 드라마에서도 나온다. 자신의 적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내가 이기면 너 도게쟈 해 라고 하는데... 일본인들 왜 이렇게 도게쟈를 좋아하는 걸까? 도게쟈를 한다는 것과 도게쟈를 받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 걸까. 한국인인 나로선 도저히 감이 잘 안 오는 것이다. 일본 드라마를 보다 보면 외울 수 있는 단어가 몇 개 있다. '도게쟈(무릎 꿇어라)', '마케이누(진 개)'같은... 자국민들끼리 경쟁 치열한 건 한국도 만만치 않은데 한국에서 쓰는 말들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음.. 난 모르겠네.

 

 

소설 원작과 미디어믹스

 

당연히 만화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이 원작이라 조금 놀랐던 기억. 일본은 어떤 콘텐츠든 모두 만화화 시켜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과장된 대사와 연기 등. 아무튼 소설 원작이라서 그런지 이야기 전개는 탄탄하다. 원작의 분량이 방대해서 그런지 중간중간 사건 전개를 나레이션으로 때워버리는 부분이 있긴 한데 방영시간은 한정적이니까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함. 드라마 중간에 나레이션이 끼어드는 건 좀... 반칙이라고 난 생각하지만. 그리고 좀 어렵게 느낄 수 있는 경제이야기도 중간중간 시간을 들여서 잘 풀어 설명한 건나쁘지 않았다. 

 

 

능력치 쩌는 주인공인 역경을 헤쳐나가며 사이다를 선물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고 교훈을 주려고 하는 전형적인 일본 콘텐츠이다. 주인공이 좀 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고뇌하면 어땠을까 싶은데,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그냥 바로 정답이 되어버리는 드라마였다. 당연함. 주인공이 다른 선택지는 생각할 수 없게끔 아주 캐릭터성이 강하고 초반부터 밑천이 다 드러나 버림. 새로울 것이라곤 없는 스낵컬처였음. 하지만 사건 내막을 추리하고 헤쳐나가는 걸 보면 은행이라는 설정과 미스테리라는 장르가 합쳐진 느낌이라 그부분이 그나마 재미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