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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대가 얼마나 싫고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 잘 알면서
얘만은 내 기대에 부응하길 바란다
그러다 타인이 내 기대에 못 미치면
그때 솟아난 감정을 보통
실망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배신감에 더 가깝다
나는 비밀스럽게 이 배신감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잊혀질 때쯤이면 꺼내 되새긴다
한 개가 되고, 두 개가 되고
여러 개의 배신감을 모았을 때쯤이면
상대가 내게 주었던 좋은 기억과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없었던 일이 되고
나는 피해자이며
무너진 이 관계의 모든 책임은
그쪽에게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여전히
책임이 그쪽에 있는 것 같다 생각하는 걸 보면
이건 병인 것 같다
그 애는 이미 무너진 관계를 밟고 저 너머에 있는데
나 혼자 이곳에 남아
관계의 잔해를 모아 붙이고
우리라는 관념에 그 애를 계속 끌어들이려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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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너무 오래 좋아하면 이렇게 됨
조심하세요